1870년 8월 31일 이탈리아 중부 도시 키아라발레 Chiaravalle(Ancona) 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레닐데 몬테소리는 지주
계급의 신부이자 지질학 교수의 딸이었으며 아버지 알렉산드로 몬테소리는 소금을 판매하는 정부 기관의 공무원으로 수학을 좋아했다.
이들은 어린 딸을 무척 사랑스러워 했다.
마리아는 5살 때까지 키아라발레에서 살았다. 100년 전의 이 마을은 여자들은 긴 치마와 단추 달린 구두를 신었고 남자들은 양복 조끼를
입고 나비 넥타이를 맸다. 수도와 전기가 없어 공동 샘에서 물을 길러 오거나 램프나 초를 사용했으며 자동차가 없어 말이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거의 모두가 가난했기에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학교 대신 시장이나 농장으로 나가 일을 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고
쓸 줄을 몰랐으나 마리아의 가족은 이들과 매우 달랐다. 아버지는 정부 기관의 고위 관직에 있었으며 부모님 모두가 읽고 쓸 줄 알았으며,
마리아는 이러한 부모님의 영향 아래 마리아는 일터가 아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마리아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였고 매사에 호기심이 많았으며, 뜨개질을 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길 좋아할 만큼 배려심이 깊었다.
또한 본인의 생각에 대한 결단력과 행동력이 있어 불합리한 것에 대한 즉각적인 항의도 할 수 있는 소녀였다.
마리아가 5세 때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 알렉산드로는 기사 훈장을 받을 만큼의 고급
관리였으며 외동딸이었던 마리아는 또래 아이들이 많았던 이 도시 생활을 즐거워했다.
마리아는 6세 때 첫 학교를 가게 되었다. 학교는 더럽고 칙칙하고 춥고 시끄러웠으며, 신체에 잘 맞지 않는 불편한 의자와 책상, 선생님이
가르치는 똑같은 내용을 끊임없이 듣기만 해야 했다. 이때 마리아는 “학교란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관심있는 모든 것을 탐구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선생님들은 학교를 보다 즐거운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3학년의 상급 이상부터는 여자 학교, 남자 학교로 나뉘었고 마리아는 12세까지 여자 학교에 다녔다. 이 시대에는 학교를 계속 다니는
어린이들이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도 소년들만 가능했다. 부유한 가정의 대부분 소녀들은 일을 하지 않고 예의바른 숙녀가 되기 위해 바느질,
요리, 차 끓이는 방법 등을 배웠다. 마리아의 아버지 또한 마리아가 이런 숙녀가 되길 원했다.
마리아는 우수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12세가 되자 남자들만이 가는 기술학교의 진학을 스스로 결정했다. 어머니는 찬성하였지만 아버지는
몹시 실망하였고 반대하였다. 아버지 알렌산드로는 더이상의 교육은 필요하지 않으며 마리아가 자라서 결혼하기 위하여 준비해야 하는
때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 레닐데는 마리아는 영리하고 븍별한 소녀이기에 기술학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마리아는 그렇게 했다.
마리아는 일터가 아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기술학교 역시 음울한 분위기였지만 배울 것이 많았기에 마리아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마리아를 포함해서 2명 밖에 없었던
여학생들에게 교장은 특별한 규칙을 만들어주었다. 그 규칙들은 남자들과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없었으며, 쉬는 시간에 같이 놀 수도
없다는 규칙이었다.
마리아는 두번째의 결심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이 시대에서 대학교는 남자들만이 갈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 레닐데는
적극 찬성하였으나 아버지 알렉산드로는 극구 반대를 하였으며 아버지를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의과대학 학장은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하였다. 마리아는 세계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생각이 궁금하였고 자기의 문제를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마리아는 이탈리아에서 의과 대학에 들어간
첫번째 여성이 되었다.
여자가 혼자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규칙이 정해졌다. 남자학생들이 해부나 시체를 연구할 때 같은 시간에 실습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래서 마리아는 혼자 늦은 밤에 초나 램프의 불빛에 기대어 혼자 실습을 해야 했으며 궁금한 것들을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또한
마리아는 아버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에 가정부의 일을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마리아는 의학 공부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산책을 나갔는데 그때 신비한 일을 경험한다. 한 거지 여성이 어린아이를
업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빨간 색종이를 찢으며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이 장면에서 마리아는 마음속에 불꽃이 스치고 용기가 가득 찼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마리아는 1896년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이탈리아의 최초 여자 의사가 되었다.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마리아는 연설을 하였다. 아버지 알렉산드로는 딸의 연설하는 모습을 보며 의사만이 아니라 어엿하고 예의바른
숙녀가 된 마리아를 볼 수 있었다.